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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소식




2018년 6월 전학진선교사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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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세업 작성일18-06-28 03: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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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진 선교사의 선교소명과 훈련
그리고 사역간증 이야기
 

예수영접과 신학훈련
고등학교시절 설교 말씀을 듣던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학생회 시절 큰 은혜를 받으면서 73 빌리그래함 전도집회와 엑스포74 전도대회를 참석하면서 목회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소명의 길임을 깨닫고 헌신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목회자의 기본소양과 신학 및 목회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역하는 동안 미국의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D Min을 마쳤습니다.

선교소명과 선교훈련
77-79년 군 복무기간 군종으로 동부전선 방책선(DMZ) 에서 근무하면서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방책선 안의 짐승들과 나무 및 돌들을 바라보고 기도하던 중 “저렇게 자유가 없고 어두움의 세력들에 갇혀 있는 사람(곳으로)들에게 가라”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과 감동을 받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총신대학에 복학 후 공산권 선교운동을 일으키면서 선교에 깊은 관심과 헌신이 계속되면서 선교사로 소명 받은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신학훈련을 받는 중에 총회선교훈련원(MTI, 현 합동GMS소속)에서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선교운동을 하다가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공산권선교에 헌신하였지만 80년대까지 공산권(중국)나라에 선교의 문이 열리지 않아 국제선교단체인 SIM과GMS와 함께 이중멤버로 서부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파송 받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목회훈련과 선교사 파송
총신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중에 신림동 동산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를 거치면서 14여 년 동안 목회자의 소양훈련과 목회를 배우면서 선교사로 준비하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선교현장사역에 큰 도움과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동안 지역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힘써오면서 동산교회의 후원으로 SIM(serving in mission since 1893)과 합동교단(GMS) 선교사로 1989년 파송을 받게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역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70년대 공산권선교에 헌신하였으나 80년대까지 중국과 공산권국가의 문이 열리지 앉자(한중수교 92년) 예장합동교단과 SIM국제선교회의 안내를 받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Nigeria) 선교사로 파송 받아 14년간 ECWA Theological Seminary Kagoro에서 목회자를 훈련하는 사역과 ECWA 교단의 선교부EMS(Evangelical Missionary Society)의 이사로 섬겨왔습니다. 2002년 한국SIM본부 대표(Director)사역의 부름을 받아 10여 년간 사역을 하면서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를 돌보며 한국교회와 함께 선교운동을 하면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선교한국에서 선교운동에 동역해 왔습니다. SIM선교회 운영을 위하여 선교사 훈련(SIMTI)을 세워 선교동원을 해 왔습니다. 또한 그 기간 중에 중국선교에 부담감을 계속 갖고 있었기에 선교사를 훈련하여 중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 파송해 오면서 중국교회 선교동원을 동시에 해왔었습니다.

임기 10여 년 한국본부사역을 마치면서 네팔 선교지를 방문하던 중 선교가 절실히 필요한곳임을 느끼면서 많은 부담감을 받았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이 말씀으로 인도하심으로 믿고 네팔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네팔에서 신학교(Highland Frontier School of Missions)를 세워 미전도 지역 산고마을에 파송하여 사역하게 하는 일과, Global Leadership Training Center(GLTC)를 세워 국제선교사 훈련(중국과 한국선교사)과 지도자 교육을 하는 일에 헌신해 왔습니다. 네팔 대지진 후 김귀영선교사(상담사)와 함께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네팔선교사들을 위한 멤버케어와 지역교회를 돕는 상담사역(Debriefing and Counselling)을 해왔습니다.

네팔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고 헌신해 오던 중 2017년 2월 갑자기 파송교회인 동산교회를 통하여 러시아로 선교지를 옮겨 사역할 것을 제안 받았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에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우수리스크 교회를 섬기시던 박광정 선교사님께서 암 투병으로 철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러시아 사랑의 빛 교회가 공산국가로부터 온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임을 확인하면서 70년대 공산권 선교에 헌신한 것을 기억나게 해 주시고, 박선교사님께서 소천하시기전 와서 간곡히 사역해 주실 것에 대한 강력한 제안을 받고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환경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순종하여 2017년 6월 18일에 러시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수리스크의 사랑의빛교회, 다민족교회 담임을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선교현장 사역이야기

제1차 사역지: 나이지리아(Nigeria) 선교 이야기 (1989-2003)

나이지리아에는 카고로 신학교(ECWA Kagoro Theological Seminary)는 SIM국제선교회에서 아프리카 목회자를 세우기 위한 신학교로서 90여년이 된 오래된 신학교입니다. 저희들은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사역했던 곳입니다. 저희 아이들(소연, 용준)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자랐던 고향과 같은 곳, 꿈과 비전을 나이지리아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나누며 사역하였던 곳, 사랑과 열정으로 헌신했던 첫 선교지였습니다. 저희들이 살았던 카고로 부족은 매우 거칠고 사납고, 싸우기를 좋아했던 부족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을 잘라 죽창에 꽂고 “나도 한 마리 잡았다” 소리치며 좋아했던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을 헤드 헌터 마을(Head Hunter Village)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었습니다. 그 지역에 개척선교사들이 들어갈 때 강을 끼고 있는 양쪽 계곡사이에 다리가 놓아졌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위한 행잉브릿지(화해의 흔들다리, Hanging Bridg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화해의 흔들다리를 놓기까지 함께 해 준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선교의 깊은 것들을 묵상하게 됩니다. 당시 미전도 종족,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최전방 오지, 희생과 고난으로 인내가 필요했었던 곳, 그런 불모지 최전방 개척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해 준 고마운 분들에게 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선교사들을 사랑으로 격려해 주었고, 기도로 물질로 지원해 주었던 이름 모를 성도들과 교회들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또한 용감하게 자원하여 일생을 바친 선교사들이 속속 들어가 헌신하였습니다. 그분들은 많은 눈물과 헌신으로 카고로 부족이 사는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초 중고등학교가 세워졌고, 교육대학이 세워졌고, 간호대학과 신학교가 세워지면서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의 전 지역에 목회자와 선교사 그리고 교사들을 배출하는 선교 전진기지가 된 것을 보면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뿌려져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들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주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14여 년의 기간 동안 이곳 카고로 신학교에서 섬길 기회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1000여명의 목회자와 사역자 제자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나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못다 이룬 비전과 전략들을 나이지리아 형제들과 제자들에게 위탁하고 성령께서 더 잘 인도하시고 성취해 나가시리라 믿고 떠나왔습니다. 개척선교사들의 정신과 헌신으로 세워진 그 신학교는 복음의 흔들다리(Hanging Bridge)를 건설할 일군들을 계속하여 길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희망이요 후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헌신의 열매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2차 사역지: 한국SIM 국제선교회 대표사역(2003-2012) 

SIM국제본부와 한국선교사들의 추천과 제안으로 한국본부사역에 위임받고 한국SIM대표로 10여 년간 사역해 왔습니다. 선교본부 사역은 한국교회와 국제교회들과 선교사와 열방의 선교지로 연결하는 화해의 흔들다리(Hanging Bridge)를 건설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 다리를 건설하고 건너가서 선교운동에 참여하고 동역할 일군들을 세워가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은 눈물어린 노력과 헌신이 요구되는 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감당해야 할 인내가 필요했었습니다. 섬김과 책임감, 부담감과 부족함 그리고 긴장감과 감사가 늘 교체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과 열정을 쏟아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열매의 가치를 알기에 빚진 자의 심정을 주신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선교회를 운영해 가면서 선교사님들을 섬기며, 선교동원과 훈련, 파송하는 일들을 한국교회와 함께 동역해 왔습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국제기관들과 함께 건강한 선교 Networking 및 선교인프라(Mission Infra Structure)를 세워가는 일이 파송본부의 주 사역이었습니다. 때로는 가시적으로 들어나는 열매나 성과도 별로 보이질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늦어질지라도 목표와 비전이 있었기에 꿈은 계속 진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함께 인내로 기도와 물질로 동역해 주신 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교회 공동체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선교사들과 이사들과 스텝들의 땀과 헌신의 동역이 아름다웠습니다. 되돌아보면 모두가 감사한일들이었습니다. 꿈과 비전들이 한걸음씩 달려가는 것들을 보면서 못다 이룬 일들은 주님께서 이뤄 가시리라 믿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10여 년간을 적절하게 사용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간 동안 선교중국(Mission China)을 위한 비전을 지속적으로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중국인들이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선교운동(Mission planting)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헌신자들을 선교에 동원시키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선교본부의 행정사역 없는 선교회와 선교사는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는 중요한 사역임을 또한 경험하였습니다.


제3차 사역지: 복음의 흔들다리를 놓기 위한 네팔사역

선교현장과 본부에서의 경험은 선교지에서의 선교 실제와 이론들을 통합적으로 세워 실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안주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으나 선교현장의 영혼들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의 영적갈증과 영적싸움은 제 안에서 계속되어왔었습니다. 그래서 10여 년의 본국사역을 마무리 짓고 이제 남은 1/3의 인생의 삶을 선교현장에서 쓰임받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교현장은 더 많은 영적전쟁이겠지만 영적으로 지적으로 고갈될지라도 영혼구원에 대한 부담감으로 뜨거운 열정과 힘이 솟아났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은여생을 선교현장에 드려진다는 것이 영광이요 특권이라고 믿고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선교현장은 산 넘어 또 산이 기다릴지라도 새로운 도전과 힘이 되고 기대가 점점 더 커 갔기에 기꺼이 선교현장으로 발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지 네팔(Nepal)은
아름다운 산들이 많은 나라, 산악인들이 동경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산 넘어 산 그리고 또 산을 넘어야 하는 곳입니다. 온갖 종교가 공존하고 우상숭배가 심각한 영적전쟁이 강한 지역입니다. 또한 전통과 다양한 문화와 인습으로 접근하기 힘든 미전도 종족들이 많은 곳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요 강한 힌두교와 라마불교 우상숭배의 나라가 바로 네팔입니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과 정치 사회적분위기(Cast system)도 쉽게 한계에 부딪힐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이 절대로 필요한 곳임을 발견하고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그런 곳에서 복음의 행잉브릿지(hanging bridge)를 놓기 위해 남은 젊음을 도전해 보라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비록 당장 열매가 쉽게 열리지 않고 인내가 필요한 곳일지라도 97%의 인구가 주님의 복음이 절대로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관심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또한 히말라야 산맥 주변 국가들을 주님께서 문을 여시고 계심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미전도 종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네팔에 근접한 지역입니다. 즉 티벹,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북인도 지역의 험준한 산악지대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저희들을 부르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동역할 국제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그곳에서 국제네트워크와 선교운동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복음의 다리를 놓고 건너가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2012년 11월 네팔에 들어갔습니다. 주 사역은 현지인 선교사 훈련학교(Highland school of frontier missions)를 세워 훈련원장을 맡아 사역해왔고, 또한 ISF(International Students Fellowship)네팔지부장을 맡아 섬기면서 한국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석사 박사출신 네팔사람들을 상대로 사역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아시아와 국제사회로 나아갈 선교사를 발굴하고 훈련하여 파송하는 가교역할(Bridge)을 하기 위하여 중국선교사를 훈련하는 일에 비전을 두고 Global Leadership Training Center(GLTC)을 세워 선교훈련을 해왔습니다. 제1기 1년 과정의 선교훈련을 하는 중에 러시아에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네팔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중국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국제선교포럼을 마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4사역지 러시아 우수리스크 사랑의 빛 교회

저는 제가 신앙생활과 목회활동 하였던 동산교회에서 1980년에 박광정 선교사님을 처음 만나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박 목사님은 미국으로 이민한 후 러시아 선교사로 사역한다는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에서 암 투병으로 고생하실 때 부득불 철수하여 사역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동산교회를 통하여 정식으로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역지에서의 나이와 문화적응 언어문제 추위문제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자 많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70년대 군대생활 하던 시절 공산권 선교에 헌신한 것을 기억나게 해 주시고 ‘사랑의 빛 교회’가 러시아와 다른 공산국가에서 온 성도들로 구성된 특수한 교회임을 확인하고서 거부할 수 없는 거룩한 부담감과 부르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결정하니 맘이 편안해졌기에 미지의 사역 앞에 새롭게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의 소천 후 곧바로 러시아에 들어왔습니다. 우수리스크 사랑의빛교회에서의 사역은 일정기간동안 적응과정기간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생각하면 큰 기대감과 부담감이 교차되지만 하나님께서 많은 영광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의 빛 교회를 통하여 동북아 지역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앞두고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다민족을 섬기면서 선교지 다운 느낌이 있지만 감당해야 할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인내로 기다리며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기고 순종하고자 합니다. 

기도제목
1. 날마다 말씀과 지혜로 성령충만한 삶으로 사역에 임하게 하옵소서.
2.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과 물질을 붙여 주옵소서.
3. 언어와 문화 습득과 적응에 빠른 진보를 주옵소서.
4. 영혼들을 사랑하고 영육간의 건강한 몸으로 사역에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